[오수록 수사의 詩] 독립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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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오솔길
마른 잎 사이로
밤톨 하나 굴러왔다
몇 번이나 돌에 부딪히고
젖은 흙에 옆구리를 묻으며
산비탈 아래로 내려갔다
제 몸을 감싸던 껍질을 벗고
누군가의 품에서 떨어져 나온 자리
밤톨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땅에
가만히 몸을 눕혔다
바람이 오면
바람이 흔드는 대로 흔들리고
비가 오면
차가운 빗물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밤이 깊어질수록
흙은 더 차가워지고
잎들은 하나둘
밤톨 위로 내려앉았다
그렇게 몇 번의 비와
몇 번의 긴 어둠을 지나
어느 새벽
젖은 흙 사이로
가느다란 햇빛 한 줄기 스며들었다
밤톨은
금이 간 껍질을 조금 벌리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방향으로
희고 여린 뿌리 하나
땅속 깊이 내렸다
그리고
한참 뒤
잎 사이로 번지는 햇살 속에서
작고 푸른 얼굴 하나
처음 보는 제 얼굴을
가만히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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