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오상 (11) > 나눔글

새소식



예수의 오상 (11)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명겸요한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5-12-11 15:28

본문

4.4. 의미

 네 복음서가 예수의 죽음을 파스카와 연결한다.

 요한만의 독특한 점이 있다면,

 예수가 파스카 양으로 죽는다는 점이다.

 그것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해

 대신 죽는다는 생각이

 공관복음에서보다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생각은 세례자 요한의 말에서 시작되어

 다섯 번째 상처를 받는 것에서 마무리되면서

 볼 수 있는 표지가 된다.


 그의 죽음은 의인의 죽음으로 묘사된다.

 이사야서에서 의인은 죽고 나서 들어 올려지지만,

 요한에서 예수는 십자가 위로 들어 올려지는 것으로 죽는다.

 요한의 관점에서 그가 들어 올려진 것은

 수난을 뜻하면서 동시에 영광을 뜻한다.

 세 공관복음도 죄명패를 통해 유다인들의 임금을 이야기하지만,

 요한은 그것을 더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나무 위에 들어 올려진 나자렛 사람 예수가

 바로 유다인들의 임금이며,

 들어 올려진 순간은 예수가 영광스럽게 되는 순간,

 즉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선포되는 순간이다.


 예수의 죽음으로 그의 삶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어둠은 빛을 덮치거나 붙잡을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1,5).(Beutler, Das Johannesevangelium, 86.)

 예수의 죽음으로 세상의 빛이(8,12; 9,5) 꺼지지 않는다.

 그래서 공관복음에서처럼 어둠이

 (어둠을 뜻하는 단어가 공관복음과(σκοτος) 요한복음이(σκοτια) 똑같지는 않다.

 의미의 차이도 없지 않지만,

 성경에서 둘 다 어둠으로 번역되었다.)

 온 땅을 덮지 못한다.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온다.

 예수는 숨을 거두기 전에 목마르다라고 말한다.

 예수의 갈증에 사람들은 신 포도주를 주고

 예수는 그것을 받아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그 목마름이 육체의 목마름이 아님을 보았다.

 그것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나타난

 구원에 대한 목마름이다(4,7).(Beutler, Das Johannesevangelium, 157.)

 당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이 구원 업적은 다 이루어졌다(19,28).

 그것을 아는 예수는

 두 복음에서 나타난, 죽음의 고통을 표현하는 큰 소리보다는

 다 이루어졌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다.

 죽기까지 세상의 구원을 원했고,

 죽음으로 그것을 다 이루었다.

 그러므로 그가 들어 올려진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그 죽음이 세상을 위한 죽음임을,

 나를 위한 죽음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하느님께서 하실 일은 다 하셨다.

 그렇다면 그 영원한 생명을 받는 우리의 몫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