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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 - 니코데모와 이야기하시다(요한 3,1-2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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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겸요한
댓글 0건 조회 44회 작성일 25-02-07 21:28

본문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니코데모는
 9절에서 다시 질문한다.
 그는 인간적인 관점에 머무르기 때문에
 다시 태어남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예수가 하는 계시의 말은
 믿음으로만 접근할 수 있기에
 그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그것은 충분하지 않다.
 예수가 니코데모를 “이스라엘의 스승”이라고 부르는 것은
 니코데모가 예수를 “스승”으로 부른 것을(3,2) 떠오르게 하면서
 풍자로 사용된다.
 또한 11절의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한다”는 표현에 나타난 1인칭 복수는
 2절의 “우리는 안다”를 반향한다.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도
 니코데모는 예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확언하는 형식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가 앞서 나오는 것으로
 예수가 자신을 복수(우리)로 표현함을 알 수 있다.
 처음으로 여기에서 예수는
 요한복음에서 증인으로 나타난다.
 예수는 하늘 일에 대해서 증언하지만,
 머리글에서 빛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처럼,
 하늘 일에 대한 예수의 증언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니코데모의 질문에서
 그가 예수의 권위 있는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3,4.9).
 믿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일도 하늘 일도 이해하지 못한다.
 믿음으로만 구원의 신비가 그리스도 안에서 열린다.

 이어지는 구절에서(13-17절)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선포 형식은
 구원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사실 동사 “σωθῆναι(구원되다)”는 17절 마지막에 있다.

 13절에서 예수는
 처음으로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하면서,
 “사람의 아들”을 자신에게 적용한다.
 다니엘서의 묵시 전승에 따라(7,14)
 사람의 아들은 저세상의 모습이다.
 공관복음사가들은 사람의 아들에 대해 세 가지 방식을 알고 있다.
 심판하기 위해서 올 사람의 아들,
 지금 땅 위에 있는 사람의 아들,
 그리고 고통받고 죽고 부활할 사람의 아들.
 마지막 예가 가장 강하게 요한에게 영향을 준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요한은 사람의 아들 칭호를
 이사 42~53장에서 이야기되는
 주님의 종에 관한 언급과 연결한다.
 무엇보다도 이사 52,13~53,12로,
 소위 말하는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이다.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주님의 종이
 “들어 올려지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이사 52,13 LXX이(LXX는 70인역을 뜻하는데,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을 말한다. 70인역의 이사야서에 있는 단어의 원형과 요한복음에 있는 단어의 원형이 같아서, 요한복음이 이사야서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떠오른다.
 이어지는 절에서
 사막의 뱀 이야기인 민수 21,8 이하가 암시될지라도,
 이사야서와의 연관성도
 요한 3,13에서 전제되는 것처럼 보인다.
 요한 3,13은
 사람의 아들이 “들어 올려지는 것”은 아직 이야기하지 않으며
 그가 올라가는 것만 이야기한다.
 들어 올려지는 것은 이어지는 14절에서 표현된다.
 3,13에서 올라감에 관한 생각은
 “하늘 일”을 드러낸다는 계시에 대한 고려와 함께 소개된다.
 하느님에게서 온,
 하늘에서 온 사람의 아들만
 하늘 일에 접근할 수 있다.
 아마도 여기에
 이스라엘 역사의 다른 위대한 인물에 대한 숨겨진 논쟁이 있다.
 그 인물들은 묵시 문학 시대에
 신적 계시를 받기 위해서 하늘로 여행을 한 것으로 제시된다
 (에녹, 모세, 엘리야, 이사야, 바룩 그리고 에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