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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 -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시다(요한 4,1-4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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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겸요한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5-03-10 17:19

본문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중심적인 개념인 “추수”는
요한에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며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 종말론적 선교적 의미로 나타난다.
공관복음에서 이 개념은
구원의 열매를 마지막 날 모으는 것이나
심판이나(마르 4,29; 마태 13,30.39)
파견을(마태 9,37 이하/루카 10,2) 묘사하는 예수의 비유에 있다.
마지막 의미, 즉 파견의 의미로 요한은 이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에 따라
이삭이 꽃피는 시기와 열매 맺어 추수하는 시기 사이에
시간 간격을 계산할 수 있다.
실제 세상에서 이 간격은 없어졌다.
예수 안에서 꽃이 피면서 이미 익었고,
추수의 때가 왔다.
씨 뿌리는 이와 추수하는 이가 둘 다 기뻐할 것이다.
이 구절에서 씨 뿌리는 이와 추수하는 이의 차이를
다시 언급하는 또 다른 중심어가 소개된다(37절).
예수는 이 차이를 현재 상황에 적용한다.
다른 이들이 씨를 뿌렸고,
제자들은 그들이 뿌리지 않은 열매를 추수할 것이다.
씨 뿌리는 이와 수확하는 이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이러하다.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면서 씨가 뿌려진다.
제자들은 그 만남의 상황에 함께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씨 뿌리는 이라고 볼 수 없다.
이제 이어지는 상황에서 사마리아인들이
제자들과 함께 있는 예수에게 다가온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은
예수의 파견이 열매를 맺는 수확 때로 해석되어
예수와 함께 있는 제자들은 수확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제자들은 예수의 파견 임무에 동참하게 된다.
그들은 그들에 앞서 씨를 뿌린 이들의 “수고”에 참여할 것이다(38절).
언어 사용은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가 대화하는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
예수의 “수고”를 가리킨다(4,6: κεκοπιακώς).
이 표현은 1 테살 5,12 이후로 사목적 파견을 위한 전문어로 사용되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여인이 한 모든 것을 예수가 그녀에게 전했다고 알리는
여인의 증언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된다.
이 믿음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이해에 있어서 발전이 필요하다.
이 발전은
예수가 사마리아인들의 도시에 이틀을 머물면서 가능해진다.
예수는 그들과 함께 머물면서
사마리아인들에게 말을 하고
그들이 예수와 그의 파견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한다.
예수의 말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된다.
예수의 말은 거기에서 여인의 말을 대신하게 된다.
본문은 물론 여인의 말이 필요 없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사마리아인들이 이제 (전처럼) “더 이상” 여인의 말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예수와 그의 말을 개인적으로 만난 것 때문에,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라는 그녀의 신앙 인식으로 이끈 만남 때문에,
믿는다고 본문은 말할 뿐이다.


여행에 지친 예수는 우물가에 앉아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한다.
예수의 청은 육체적인 목마름뿐 아니라
구원에 대한 목마름도 담고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여인은
예수가 왜 그녀에게 마실 물을 청하는지 묻는다.
두 번째 대화에서 예수는 계속해서 물을 청하는 대신
이제 자신이 여인에게 물을 준다.
우물물 대신 생수인 하느님의 선물을 준다.
그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더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 샘의 물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인은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는 대화 주제를 바꾸면서
여인과 개인적인 대화를 시작한다.
구약의 우물가 이야기들은 사랑 이야기인데,
여기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은 사마리아 민족과 종교를 대변한다.
예수는 여인의 생의 비밀을 이야기하면서
여인이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그것으로 여인은 예수를 예언자로 고백하면서
예수에게 자신을 개방하게 된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예배 장소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여인은 예수의 비밀에 더 가까워진다.

여인과 대화하는 예수의 모습은
제자들이 보기에 놀라웠다.
그 놀라움으로 표현된 제자들의 생각에서
예수가 여인의 구원을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자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실행하는 것을
양식으로 삼는데,
그 뜻은 인간의 구원, 영원한 생명이다.

요한 4장에서 영원한 생명은
예수가 주는 물을 받아 마시는 사람이 누리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선물로서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은 더는 목마르지 않게 된다.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은
인류를 구원하는 것으로
예수가 세상에 파견되어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실행하도록
하느님께서 맡기신 하느님의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