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 -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시다(요한 4,1-4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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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양식 주제는 아직 화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예수가 왜 여인과 대화하는지 제자들이 질문한다.
그들의 놀라움은 이미 준비되었다.
그 놀라움은
유다인인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인 자신과 대화한다고
사마리아 여인이 놀라워했던 9절에서 이미 표현되었다.
제자들은 “왜 여인과 이야기를 합니까?”라고
단순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지 않은 질문이 언급된다.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또는 “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이 단어들에서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의 구원을 “찾는다”는 표현을 보게 된다.
하느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찾는 것이 표현된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녀가 만난 사람을 알리기 위해서 고을로 돌아간다.
그녀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갔다는 것에서
서두름을 볼 수 있다.
또한 더 깊은 의미에서
여인은 인간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생수의 원천이며
그 생수를 주는 예수를 만나고 나서,
그녀가 얻으러 왔던 물리적 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여인이 고을 사람들에게 가져간 소식은 두 가지 부분이다.
그녀는 그녀가 한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말한 남자를 만났다.
이 경험에서 적어도 그가 예언자라는(19절) 결론이 나온다.
증언의 후반부에서 여인은 그것을 넘어가고
그가 메시아일지 모른다고 질문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시카의 주민들은 예수를 향해 출발한다(30절).
“그들이 고을에서 나왔다”고 표현할 때 사용된 동사 ἐξῆλθον은
아오리스트 시제로
그들이 예수를 향해 고을에서 출발할 때
그들의 결단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믿어서
그렇게 행동했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지만,
적어도 예수가 메시아인지 확인하고 싶은 그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31-34절에서 제자들은
예수에게 음식을 드시라고 권하지만,
예수는 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는 여기에서 그가 얻는 다른 양식을 말한다.
이 양식은 상징으로 이해되는데,
그를 보내신 분, 즉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다(34절).
제자들은 그 양식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에게 그동안 누가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는지 묻는다(33절).
예수는 제자들이 일상의 음식에 관한 생각에서 넘어가도록 이끌지만,
제자들은 예수에게 물질적 음식을 권하면서
예수가 이끄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와 비슷하다.
여인은 “이 우물”(12절) 또는 “이 물”(13절)은 알고 있지만,
“그 생수”(11절) 또는 “그 물”(15절)은 알지 못한다.
그처럼 제자들은 “잡수실 것”(33절)은 알고 있지만,
“내 양식”(34절)은 알지 못한다.
다른 측면에서 예수의 참된 양식 주제는
비유적 의미에서 목마름의 주제와 비슷하다.
예수는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
목마르고 지쳐서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했다(6절 이하).
더 깊이 보면 인간의 구원에 대한 목마름이 중요하다.
예수는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것에 배고프고 목마르다.
아버지의 뜻은 인간의 구원, “영원한 생명”이다.
이것은 요한 17장의 예수의 이별 기도와 연결된다.
이 기도의 첫 구절들에서
예수의 생명과 파견의 목표가 이야기된다.
여기에서(요한 17,4) 예수가 “완성”(τελειοῦν)해야 하는
또는 “완성한” “일”(ἔργον, 단수)에 관한 말은
요한 4,34에서도 똑같다.
단어 “완성하다”(τελειόω)와 “일”(ἔργον)은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삶과 죽음을 묘사하는데 중요한 단어이다.
단수로 사용된 “일”은
아버지의 뜻에 부응하는 예수의 임무 전체를 묘사하는 표현이다.
삶과 죽음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이 세상에서 이루려는 예수는
요한 4장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세상의 구원자”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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