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 - 하늘에서 오시는 분(요한 3,31-36) (2) > 나의 형제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칸연구소

나의 형제 프란치스코
새소식 나의 형제 프란치스코

나의 형제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칸연구소

영원한 생명 - 하늘에서 오시는 분(요한 3,31-36) (2)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명겸요한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5-03-10 16:41

본문

그러나 아무도 그의 믿을 만한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이 하느님의 소식을 받아들인다는 예정설과
(요한복음은 예정설을 지지하지 않는다.
다만 예정설로 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이 있다.
하지만 예정설은 요한의 신학과 맞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하느님의 선택 보다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의 노력을 앞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분의 은총이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언급으로 이해된다(참조: 6,44).
자신의 힘만으로는 사람이
신적 계시를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다.
“확증하다”(σφραγίζειν)는
하느님께서 세상으로 보내신 아들을 “인정하셨다”고 말하는,
즉 믿을 수 있다고 도장을 찍은 요한 6,27에서만 나타난다.
그래서 아들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들이 계시자로서 아버지에게서 파견되었음을 뒷받침하고
그것으로 동시에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믿을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은(34절)
“위에서 오시는 분”이며(31절),
“하느님의 말씀을 하는 것”은(34절)
“증언”이다(32절).
이렇게 34절은 몇 가지 차이를 제외하고는 31-32절과 연결된다.
차이가 있다면,
34절은 성령을 언급하면서
아들의 계시 말씀을 성령의 선물과 연결한다.
그러면서 이 단락은 다시 3,1-12와 연결된다.

31-33절과 34-36절의 또 다른 차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내주었다는 언급에 있다(35절).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고별사에 나타난다(17,23.26).
하느님께서 아들의 손에 모든 것을 내주셨다는 것은
고별사의 시작인 요한 13,3에서 강조된다.
두 가지 점의 일치는 지금의 본문이 고별사와 가까움을 보여준다.
한편 이 주제들에서 구약의 계약 신학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한 만큼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참조: 신명 7,8 이하.13).

아들을 믿는 이들을 위한 영원한 생명의 약속은
요한복음의 중심 주제이다(참조: 3,16.18; 20,31).
불신은 36절에서 불순종으로 표시된다.
그것은, 요한에서 여기에서만 나타나고
다른 곳에서는 “심판”으로 나타나는 표현인(참조: 3,17-21),
“하느님의 진노”로 이끈다.
“하느님의 진노”는 구약의 영향을 받은 표현으로
세례자 요한이 다가오는 심판을 이야기하면서
언급하기도 한다(참조: 마태 3,7; 루카 3,7).

사람들은 예수의 증언을 접하면서
수용과 거부, 두 가지로 반응한다.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믿는 것으로,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증명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물론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신적 계시를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것을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주시며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한다.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믿음이 함께할 때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다.